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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솔) 행복했고, 슬펐고, 그 후, 중독이 되었다.

2017년 12월 05일 10:09

관리자 2017년 12월 05일 10:09 조회 5699 트위터 페이스북

결혼 후 맥주 한잔에도 얼굴이 화끈거리고 핑 돌정도의 술은 저에게는 인생에서 필요없는 음식이었습니다. 몇 년이 지나 남편의 건강이 나빠져서 직장다니는게 불안했습니다. 젊은 나이에 세 번째 입원했을 때 위급한 상황에서 비행기를 타고 서울에 있는 아산병원에 입원해서 2달정도 입원후 퇴원했습니다건강해져서 퇴원했지만 스트레스와 피로하면 안되는 질병에 걸려 직장을 그만 두게끔 했습니다. 퇴직금과 모아둔 돈을 가지고 대학가 앞 버스정류장 큰 상가에서 슈퍼를 시작했습니다. 큰아들 7살 작은아들2살 살림하는 집이 따로있어 아이를 데리고 한다는게 많이 힘들었지만 돈 벌리는 재미로 힘든것도 모르고 열심히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시작은 참 즐겁고 보람있었습니다. 해가 여러번 바뀌면서 저는 술을 마셨습니다. 손님들과, 이웃들과 조금씩 마셨던 술이 인생을 바꾸게 했습니다. 남편은 나에게 사람들 앞에서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애들 엄마는 술을 잘 마신다고 애주가라고 술먹는 자리에서 그런말을 하면 왠지 그말이 싫어서 무슨 소리냐며 술은 즐기는 거지 하면서 불쾌해 하며 짜증스러워했다. 즐겨 마신다는 술이 중독이란 병에 걸릴줄 알았으면 그렇게 마시지는 않았겠지요. 말 한마디도 조심스럽고 내성적인 나는 술을 마시면서 변해갔습니다. 주쥐에서는 우리 가족을 늘 부러워했습니다. 두 아이들에게 신경쓰지도 않은 무책임한 엄마였는데 학교에서는 항상 우수했고 모범이었고 속 한번 썩인적없는 똑똑하고 착한 아이들이였습니다. 엄마인 나는 성격상 학교 찾아다니게 어색해서 슈퍼 바쁘다는 핑계로 학교를 찾아가 본적은 입학식 체육대회졸업식때만 다닌 것 같습니다. 큰아들은 영재들만 다닌다는 특목고를 졸업하고 어렵다는 서울 연세대를 들어갈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힘이 되었지요. 그 힘으로 남편은 더 열심히 일을 찾아 다녔지 몸은 돌보지 않고 저축을 알뜰하게 했습니다. 두 아이들 대학 등록금까지 적금을 들어놓고 악착같이 살았습니다. 남편은 아이들 미래에 같이 할 수 없다는걸 예감이라도 한건지 몸이 상한줄도 모르고 피곤하면 힘들어서 피곤한거야 라며 몸을 돌보지 않았어요. 정기적으로 검사를 해야 하는데 본인 몸에는 무심했습니다. 장점이 참 많은 사람인데 단점이 있다면 성격이 급하고 고집이 쎄서 누구에 말도 듣지 않았어요. 병원을 가지 않을려고 했습니다. 늘 괜찮다고 하면서 오히려 나에게 말을 했습니다. 버릴 것 없는 사람인데 술이 문제라고 술을 자주 마셨들 때 남편은 술을 마시지 않았어요. 술 냄새가 얼마나 싫었을까...  술 마시고 늦게 들어와 자고있는 남편깰까봐 씻지 않고 침대 모서리에 살짝 누우려고 하면 오늘도 술이냐며 달력에 술 안마시고 온 날을 체크해야겠다고 짜증스럽게 말을 했다. 무슨 말이냐며 안마신 날도 많아! 오히려 화를 냈다. 냄새 난다고 씻고 자라고 하면 못 들은척 했다. 여자 입에서 허구언날 술 냄새 싫다고 했다. 그러면 등돌려 자면 되잖아 하며 짜증을 내면서 다툼이 많아졌다. 가끔 일찍 들어와 있거나 술을 안마신 날은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면서 윤여사 오늘은 술 안마시고 일찍 들어왔냐며 환하게 웃어줄때도 있었다.

남편은 슈퍼를 시작해서 술을 마시게 한 것 같다며 후회를 한다고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술 취하지 않은 맑은 정신으로 지내다 보니 술 냄새가 역겹고 싫을때가 있는데 안 마시던 남편은 얼마나 싫었을까? 많이 미안하다. 그렇게 고생시켰던 남편은 어느날 새벽 복통을 호소해서 응급실가서 검사를 했다. 입원해야 한다고 했다. 느낌이 안좋았다. 나는 몇시간 전까지 술을 마셔서 몸은 지쳐있었는데 그 소리에 모든게 멈췄다. 남편은 애써 태연한척했다. 아침 서울로 오는 첫차를 탔다 병원은 큰아들이 다니는 대학병원 신촌 세브란스병원에 입원을 했다 의학발달이 좋아져서 방법이 있을거라고 박사님이 안타깝게 바라보며 힘내라고 하셨다. 결과는 나빴다. 여러 가지 검사를 해 보았지만 희망이 없다. 그럴때마다 남편몰래 복도를 걸으면서 한없이 울었다. 너무 많이 부어있는 눈을 남편이 보면 속상할까 시간이 지나서야 병실로 들어가 남편 눈치를 보게 된다. 남편은 나에게 그랬다. 걱정 말라며 이까짓거 이길수 있어 꼭 일어날테니 걱정말라며 퇴원해서 근사한 옷한별 사 주겠다고 했다. 제발 나아서 예쁜걸로 꼭 사줘야해 그렇게 말을 하면서도 마음이 무너졌다. 가망이 없었으니까... 의식도 있다, 없다하고 끝내는 꼼꼼하던 사람이 기저귀를 차야하고 막무가내로 링거를 끌고 다니다 바늘이 빠져 피가 온바닥에 범벅이 됐다. 잠깐 커피한잔 마시러 간 사이에 일어난 일이다. 간호사가 묶어야 한다고 했다. 위험해서 환자를 위해서 허락했다.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도 남편은 침대가 부서질 정도에 힘으로 살려달라며 소리소리 질렀다. 부탁해서 제가 꼭붙어있을테니 풀어달라고 했다. 그렇게 18일만에 고통스러워하며 세상을 떠났다. 가는 얼굴 편하지않았다. 눈도 감지 않았다.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얼굴을 보면서 가슴이 찢어졌다. 다들 각자 자기 위치로 돌아갔다. 큰아들 서울로 작은 아들 기숙사로 혼자 집에 남게 되었다. 혼자서 허전함, 외로움, 어떻게 해야할지도 할수도 없었다. 빈자리가 혼자 있으면서 크게 느껴졌다. 잠이 오질 않았다. 18일 동안 처음 몇일자고 잔적이없다. 남편이 잠을 자지 않았다. 항상 쫒아다녀야 했다. 잠시도 가만히 있질 않았으니까... 너무 힘들고 지쳐서 자고 싶은데 잠은 못자고 울기도 하고 외로워서 혼자여서 너무 미안한게 많아서 사진을 붙들고 많이도 울었다. 술에 힘으로 처음엔 조금씩 잠을 잘 수 있었다. 그것도 잠시였고 그 후로 아침, 저녁, 가리지않고 슈퍼를 이곳저곳 헤메며 사서 마셔대고 있었다. 다니던 마트 직장에서 그만 털고 나오라고 했다. 힘들어서 이상태로는 일을 할 수도 없고 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만 두겠다고 했다. 도와달라고 했지만 거절했다. 혼자서 마시는 술은 혼자 있으면서 시작되었다. 매일 그날이 그날 왜 이렇게 사는지 무서웠다. 술을 안마시고 참아보려 했다. 그때는 몰랐다. 그게 금단이었다는걸...어깨를 짖누르고 머리는 터질려고 했고 온몸이 쑤시고 아프고 식은땀에 속은 울렁거리고 날이 밝기만 기다렸다가 응급실로 갈 수밖에 없었다. 잠을 잘 수가 없어서 술을 마셨고 지금은 이렇게 아프다고 설명을 했다. 안정제와 기본적인 검사 혈압이 170정확히는 모르지만 높은 혈압이었다. 그래서 머리가 터질 듯이 아팠던 것같았다. 응급실에서 혈압이 떨어지면 정신과 진료보고 가면 좋겠다고 했다. 난 망설였다 내가 왜요? 했더니 요즘은 불면증, 우울증등 병원을 찾는 사람이 많다며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말라고 설명해 주셨다. 정신도 없었고 어지럽고 힘이 들었지만 선생님만나 상담하고 약을타서 집에 돌아와 그날저녁 잠을 잘수 있었다. 잘수 있었다는게 너무 신기했다. 머리도 한결 맑고 기분이 좋아졌다. 그렇게 밥도 먹고 운동도 하고 잘 지내다 병원에 갔다. 선생님을 보고 첫마디기억한다. 감사합니다. 잠을 잘수 있게 해 주셔서 하면서 인사를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몸은 회복이 되어가고 또 다시 조금씩 음주를 했다. 이렇게 살수 없다고 생각을 했다. 술 때문에 죽기 싫었던 것 같습니다. 이곳으로 오면 지나온 과거 잘못했던 행동, 다 가질수 있을거라 생각했습니다. 퍼부으면 새로운 삶이 펼쳐질줄 알았고 꿈을 안고 이곳으로 왔습니다.정들었던 이웃들, 친구, 언니들 동생들, 등지고 돌아설때는 아쉬움도 켰지만 내가 살기 위해선 떠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친구 식구들이 모여사는 이곳에 오면 나의 힘든 부분들도 같이 나누며 덜 외로울거라 생각하고 마음을 먹었는데 작은 아들 고2학년 이었고 기숙사생활을 하고 있었지만 마음에 걸렸습니다. 아들에게 말을 했습니다. 엄마 안양 이모들 있는곳으로 가고싶다고 하면서 너만 두고 갈려니 미안하다고 했다. 싫다면 졸업하고 같이 떠나자고 했더니 아들 하는말 엄마 괜찮아 먼저 가 있어 나도 어차피 서울로 대학 갈건데...’ 하면서 당연하듯 말을 해서 그렇게 저는 이곳으로 이사를 왔는데 기대와는 달랐습니다. 더 힘들고 외로웠습니다. 입,퇴원 반복에 가족들과의 관계도 멀어지고 신뢰감도 잃었습니다. 지금은 가족과의 관계를 회복해가고 싶고 맑은 정신의 나 답게 평범하게 보통엄마로 살고 싶습니다. 중독이 되기전 나 답게 보통엄마로 살고싶어 회복의 길을 가기위해 도전했고 하고 있는 자신에게 감사하고 자신감도 많이 생겼습니다. 그 도전 외로움을 술에 의지했다면... 지금은 아리솔 공동체에서 살아있고 우리가족 선생님들이 있어서 참 좋습니다. 손 잡아주고, 보듬어주고, 그래서 행복하고 외롭지 않고 회복의 길로 가기위해 하루하루 맑은 정신으로 살아가기위해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선생님들과 함께 하겠습니다.